충남도, 28일 충남도서관 대강당에서 내포권역 학술세미나 개최

[노동일보]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박물관 4층 전시실에 가면 압도적인 불상이 있다. 보는 사람 눈높이의 두 배에 이르러 시선이 멈춘 곳에 다소 근엄한 표정의 불상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에서 있던 철불 여래좌상이다. 높이 257㎝, 무릎 너비 217㎝ 크기이다. 조성 시기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신라 말기 고려 초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보원사에 주석하였던 탄문스님이 고려 광종 즉위년인 949년에 석가삼존금상을 조성하고, 또 광종 6년에는 왕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삼존금상을 주조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에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사람 두 배에 이를 정도의 거대 불상을 쇳물을 부어 만들었다는 것은 당시 하이테크(Hi-Tech)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다 섬세하고 정교한 수준을 감안하면 예술적, 기술적 수준이 최상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럼 누가 이처럼 고도의 기술과 예술을 완성하였을까?                  

             서산의 수많은 야철지, 일본 국보인 백제 칠지도 제작 배경

일본의 국보, 백제 칠지도(七支刀).

현재 나라현 덴리(天理)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이다. 일곱 개의 가지로 되어 있어 칠지도라 이름 지은 이 칼의 제작 연대와 제작 장소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어왔다. 특징 중 최고는 금상감 기법으로 새겨 넣은 61자 글자이다. 상감기법은 금속, 도자기, 목재 등의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속에 금이나 은을 넣어 채우는 기술이다.

관련하여 2015년 서산에서는 ‘칠지도와 백제의 사철제련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에서 주목할 점은 일본서기의 기록과 명문 등으로 미루어 칠지도는 백제의 수도(사비)로부터 서쪽으로 7일 이상 거리에 있는 곡나(谷那)라는 곳에서 사철을 원료로 제조되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지역은 전국적으로 분포된 사철지 중 6개의 야철지가 집중되어 있고 철과 소금을 장악했던 서산 부장리 고분군이 보여주는 당시 지배세력의 존재, 중국, 일본의 교류 중심지로서 내포권역의 위상 등을 살펴봤을 때, 칠지도는 서산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이 발표의 중론이었다.

이를 위해, 내포권역의 야철지 등 자원조사가 시급하고 지금도 흩어져 있는 쇠똥(슬러그)와 야철지 유물조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야산이 품고 있는 내포권역, 역사문화유산의 보고

가야산에는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보원사지에는 법인국사보승탑(978, 보물 제105호)과 탑비(보물 제106호), 석조(石槽, 보물 제102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와 5층 석탑(보물 제104호) 등이 있다. 보원사에서 제작한 경판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융성하던 시기 100여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내포문화사업단(공동대표 정범, 신명)과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이종수)는 그동안 백제의 왕도였던 부여, 공주에 비해 덜 알려지고 연구되었던 가야산 내포권역의 역사 문화자원 발굴과 조사연구, 지역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해 3월 27일 오후 1시부터 충남도서관 대강당에서 학술세미나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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