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침구와 약탈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사례, 조사연구 필요성 높다

[노동일보] 

나고야성박물관에 전시된 개성 흥천사 고려불화(복제품).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일본소재 한국기원문화유산 탐방단은 수차례 일본 큐슈지역을 탐방하였다. 그 중에 2015년 12월에는 일본 나고야성 박물관을 탐방하였다. 그 날은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 다소 을씨년스런 분위기였고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 찾은 박물관은 탐방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탐방단은 한반도에서 유래된 여러 유물과 역사적 기록을 살피다가 박물관 중앙에 있는 수월관음도 앞에 일제히 발걸음을 멈췄다. 우선은 사람 크기의 약 2배에 이르는 압도적 크기와 섬세한 표현, 그리고 성화(聖畫)로서의 경건함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언제 누가 왜 조성하였고, 이 자리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양류관음상(복제), 제작연도 1310년. 카가미신사 소장>

진품은 현재 큐슈 가라쓰(唐津)시의 카가미 신사에 있으며 나고야성 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있다.  진품 양류관음상(일명 수월관음도)는 고려 왕비의 소원으로 궁정화원에서 제작한 고려 불화의 걸작품, 그림 하단의 중앙부에 있는 묵서명을 보면 고려에서 제작된 후, 곧 바로 일본에 전해져 남북조시대 말인 1391년 승려 료켄에 의해 카가미 신사에 봉납된 것임을 알 수 있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이 안내문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 2005년 환국한 북관대첩비도 1970년대 최서면 박사에 의해 발견되기 전에는 비문(碑文)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왜곡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 속에서  1357년 9월 개성 흥천사에 침구한 왜구에 의해 충선왕 부처의 초상화와 함께 약탈당했다는 논문 <가라쓰 카가미 신사 소재의 고려 수월관음도의 유래>을 보게 되었다. 논문에서 방송대 이영 교수는 고려사 권 제39. 공민왕 6년 9월 무술일(26일)에 있었던 “왜적이 승천부의 훙천사에 들어와 충선왕과 한국공주의 초상화를 가져갔다.”라는 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히라타 칸(平田寬)의 <카가미신사 소장 양류관음화상>에서 “ 본 그림은 기진명(寄進銘)이 있어서 명덕2년(1391년) 승려 양현에 의해 카가미 신사에 기진(기부하여 바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명덕2년 이전의 남북조 시대에 특히 격심하였던 왜구, 빈번하게 고려로부터 파견된 사절들이 일본으로 왔을 때에 카가미 신사를 포함한 마쓰무라 지방 사람들이 침구하거나 또는 사적인 무역인 무역 등을 통해 고려와 깊이 교류하고 있었음을 상정할 수 있는데, 그 기간 중에 문물로 건너 온 것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영 교수는 외교적인 이유로 전래, 즉 선의 취득의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단정한다. 이유는 불교를 국교로 한 고려왕조가 왕실과 깊이 관련된 초대형 수월관음도를 일본에 넘겨주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357년 9월 26일 개성 흥천사에 침구한 왜구들은 최대 규모의 고려 청동반자(靑銅飯子)와 감지금자묘법연화경(甘旨金字妙法蓮華經) 등도 약탈하였음을 확인된다고 강조한다. 청동반자는 지금 대마도 다구쓰다마신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묘법연화경은 나베시마 호코카이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충선왕 2(1310년), 숙비 김씨가 제작

그러면 세로 4.19m, 가로 2.54m,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에 최대 규모인 수월관음도는 안내문에 있듯이 고려 왕비의 소원으로 조성되었다 하는데 그는 누구인가? 제작 시기인 1310년은 고려 26대왕 충선왕 재위 2년으로 당시 수월관음도를 조성한 왕비는 숙비 김씨이다. 숙비는 당시 경쟁관계에 있는 순비 허씨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궁중화원에게 명하여, 그해 5월에 불화를 완성한다.

이렇게 조성된 수월관음도는 당시 원 황실과 고려 왕실에 밀접한 관련이 있고, 관음신앙을 잘 구현할 수 있는 개성 흥천사에 봉안되었지만, 공민왕 6년인 1357년 9월 26일 왜구들에 의해 약탈당해 규슈의 카가미 신사에 1391년 기증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내문의 내용처럼 1310년 조성된 이후 곧바로 일본에 전해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이에 대한 ‘내력 조사’가 더욱 필요하다.

왜구의 침구와 약탈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사례, 조사연구 필요하다

최근 서산 부석사금동관음상이 고려 말 서산을 침구한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사실 등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지면서, 약 530여회에 이르는 왜구의 침탈과 피해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 중에 개성 흥천사 수월관음도와 청동반자, 감지금자묘법연화경은 대표적으로 왜구에 의한 약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개성 소재 문화유산은 향후 북한에서 일본에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공조 차원에서 이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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