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논란"이후 방문객늘고 주변상가 분주

[노동일보] 

일제시기 목포 모습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대표적인 도시가 인천,부산,군산,대전,목포이다. 인천은 가장 먼저 개항, 침략의 거점을 삼았다. 부평에는 전국에서 징발한 쇠붙이로 무기를 만드는 병기제조창이 있었다. 징발은 중국에서 있었고, 그때 들어 온 중국 범종이 인천시립박물관하고 전등사에 있다.

부산은 시모노세키항까지 운행하는 관부연락선에 징용노동자를  실어 날랐다. 부산에 일제강제징용역사관하고 강제노동자동상이 있는 이유이다.

군산은 곡물수탈항구였다. 군산에는 지금도 곳곳에 일제의 유산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국사이다. 인상적인 점은 일본 불교계의 한 종파인 조동종에서  침략과 수탈을 참회하는 '참사문비'가 있다.

대전은 영남과 호남이 마주하는 교통 중심지로 개발되었다.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까지 이르는 중앙로에는 당시의 건축물과 흔적들이 남아있다.

목포는 곡물 수탈과 상업도시였다. 항구와 철도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은 남촌에 모여 살았고 조선인들의 북촌에 모여 살았다. 특징적인 점은 항구와 철도역이 인근에 있다는 점이다.

1910년대와 지금의 목포는 수십배의 면적차이가 있다. 바다를 메우는 간척은 개항이래로 현대까지 지속되었다.

"손혜원 논란"이후 방문객늘어, 상가 활성화 분위기

문화유산회복재단 탐방단은 지난 20일 목포를 찾았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은 목포역에서 모여 우선 점심 식사 장소를 찾았다. 생선백반식당  입구에는 이낙연국무총리가 식사했다고 한 광고가 크게 걸려 있었다.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식당은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렸다. 음식은 풍성 했고  인심도 좋았다.  활력이 넘쳤다.

탐방단은 1박 장소인 창성장으로 갔다. 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다. 색감 좋게 꾸민 창성장은 언론보도 덕분에 유명세를 치루고 있었다. 예약한 숙박인만 출입이 가능한데도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허락도 없이 시설안으로 들어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예약하지 않으면 빈방이 없다하였다.

창성장을 나와 적산가옥이 늘어선 옛 거리를 걸어서 목포근대역사관에 갔다. 역사관은 두 곳으로 나눠져 있는데 한 곳은 근대의 역사와 항일운동 역사를 보여주고, 다른 곳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곳의 근대유산도시 전시관보다 자료와 이야기 구성이 짜임새가 있었다. 다만 옥의 티는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표기한 점이다. 일제는 조선을 동서남북으로 구분하고 그 중심은 "중앙""제일"이라 이름하고 자신들이 차지하였다. 그 잔재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것은 씁쓸하다.

'영화 1987' 촬영지 "연희네 슈퍼"에서 만난 도시재생, 코끼리열차 운행 등 탐방객 편의 필요

탐방단은 역사관을 나와 "이훈동정원"을 찾았지만 휴관이었다.밖에서 본 정원에는 백제양식의 탑이 눈에 띄었다.

영화 1987 촬영지인 일명"연희네 슈퍼" 에는 젊은 탐방객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았다. 80년대 공중전화, 포니택시, 영화포스터와 간판, 골목길이 추억 여행 발길을 재촉하였다.

달동네의 골목마다 마을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을 노래한 시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많은 집들이 잠겨있는 것으로 보아,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공공자산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목포에는 많은 근대유산과 풍성한 음식, 바닷길과 하늘길 등 역사문화자산이 풍성한 곳이다. 생활도자기 박물관에서 만난 창의적인 도자들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이런 곳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좀더 세밀한 연구와 특성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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