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열풍이다. 지난 6일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2만여 명이 참여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플래시몹은 지난 달 시청 광장에서 열린 공연에 비견할 정도로 대단한 장관이었다. 유럽의 중심 파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는 모습은 수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싸이는 프랑스의 라디오 방송과 함께 한 이 플래시몹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본격적인 유럽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싸이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의 강연은 물론, 오는 11일 독일에서 열리는 MTV 유럽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미국, 유럽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싸이’와 ‘강남스타일’이 대세라는 사실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7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발표될 당시, 중독성있는 일렉트로닉 장르의 이 음악은 국내 음원 시장에서도 연일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던 싸이였기에, 이제까지 그가 불렀던 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된 뒤 해외 유명 인사들의 트위터에 동영상에 관한 언급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더니, 마침내는 유튜브에서 6억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역대 2위의 성과를 이뤘고, 영국 UK차트 1위, 미국 빌보드차트 2위 등을 기록하며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까지 수훈하였다.

사실 미국과 유럽 시장을 공략하려던 K-POP의 움직임은 싸이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이돌 가수들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의 굴지 연예기획사들은 이미 수 년 전부터 탈아시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몇몇 눈에 띠는 성과들도 있었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2NE1 등 다수의 아이돌 그룹들은 미국, 유럽에도 팬덤을 형성하며 세계 시장에서 나름의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싸이의 미국, 유럽에서의 열풍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모두 뒤엎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연예 기획사들이 치밀한 전략을 고민하며 수 년에 걸쳐 준비한 해외 진출에 비해, 싸이가 진출하게 된 계기는 실로 의외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웃기는 뮤직비디오였다. B급 정서를 자극하는 코믹한 동영상은 유튜브와 트위터의 힘을 빌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퍼졌고, 네티즌들의 표현처럼 해외로 ‘강제 진출’되었다. ‘국제가수 싸이’의 시작은 분명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싸이의 해외 진출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가지로 상황이 좋았다. 시기적으로 K-POP의 미국, 유럽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어서 한국 가수의 해외 진출이 어색하지 않았고, 지금과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미국, 유럽 진출이 가능하도록 해외 프로모션에 노하우가 있는 대형 기획사에 몸을 담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 유학 경험 덕분에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해외 시장 진출에 문제 없는 영어 의사 소통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중독성있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유행이었던 점도 싸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이 지속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다. 분명 대한민국 최초 빌보드 2위라는 기록은 의미있긴 하지만, 이것이 앞으로의 활동을 보장해 주진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빌보드 1위에 올랐던 모든 가수의 노래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1위의 가수들도 그런데, 하물며 2위에 오른 아시아 가수를 유럽과 미국의 팬들이 얼마나 오래 기억해줄지는 미지수다. 지금의 싸이 열풍이 지니는 한계인 동시에, 그의 인기를 지속가능케 할 중요한 열쇠가 미국 방송의 한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미국 NBC 유명 토크쇼 ‘엘렌 쇼’에서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강남 스타일의 ‘말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있던 한 뚱뚱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양 남자, 싸이가 깜짝 등장한다. 무대에 오른 싸이에게 토크쇼의 진행자 엘렌은 말춤을 한 번 배워보자며 다짜고짜 싸이에게 말춤을 춰 보라고 한다. 그러자 그 뚱뚱한 동양 남자가 유창한 영어로 대답한다.

“(그 전에) 먼저 내 소개를 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한국에서 온 싸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싸이의 영문 표기 ‘PSY’가 ‘SPY’로 오기되었다. 단순 실수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만 관심있게 봤어도 수정되었을 법한 실수라서 그리 유쾌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지금 싸이 열풍의 한계다.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던 ‘강남스타일’이고, 미국 토크쇼 사회자가 관심있는 것은 뚱뚱한 동양 남자가 우스꽝스럽게 추던 ‘말춤’이다. 해외 팬들의 머릿속에는 ‘말춤’과 ‘강남스타일’은 있지만 가수 ‘싸이’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싸이 열풍이 해외에서 지속가능하려면 ‘강남스타일’이나 ‘말춤’보다 뮤지션 ‘싸이’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20 여년 전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마카레나’를 기억한다. 양팔을 휘휘 젓던 중독성 있는 춤과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는 독특한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그 가수들이 후에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직까지 싸이는 세계인들에게 마카레나를 불렀던 가수들과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 4일 8만명이 모인 시청 공연, 싸이는 그 공연을 두고 ‘그냥 하는 공연이 아니라 해내야 하는’ 공연이라고 표현했다. 공연이 끝난 후 세계 뮤지션들은 입을 모아 싸이에게 ‘너 신인 아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강남스타일을 필두로 한 일렉트로닉 장르부터, 발라드까지 빠른 곡과 느린 곡을 적절히 배합한 그의 공연 구성은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했다. 전세계로 생중계 되는 공연에서 싸이는 자신의 진면목을 훌륭하게 보여준 것이다. 싸이 본인의 무대 장악력과 그에 반응한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충분히 보여준 것 역시, 싸이를 익명의 동양남자에서 ‘뮤지션’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었다. 여기에 ‘대한민국’을 부각하는 민족주의 마케팅을 통해 한국에서 해외진출을 응원해 줄 지지기반을 마련하면서 해외 팬들에게 그가 한국에서 갖는 위상을 훌륭히 포장하는 효과도 낳았다. 또한 미국 진출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현지 메이저 기획사를 일찍 정하고 특유의 적응 능력으로 현지 인맥을 착실히 쌓으며 뮤지션 ‘싸이’의 존재감을 조금씩 부각시키고 있다. 싸이 스스로 풀어야할 숙제를 잘 알고 있는 듯한, 영리한 행보라 할 수 있다.

최근 싸이는 선배 가수 김장훈과의 갈등과 소녀시대 윤아의 스캔들까지 크고 작은 홍역을 치르며역시 ‘말 많고 탈 많은’ 가수임을 증명했다. 싸이가 정면으로 해명했어야 할 일들도, 언급조차 민망한 어처구니없는 일들까지 다양한 사건들이 부각되면서, 이 잡음들이 싸이의 해외 진출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싸이는 원래 호감형 가수가 아니었다. 워낙 음악이나 공연의 스타일도 19금과 밤 문화를 주 소재로 해서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데다가, 데뷔 후 대마초 파문과 군복무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오랜 시간 동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해외 시장에서 이제 막 신인으로 데뷔한 싸이는, 아직까지 비호감 가수도, 얼굴 없는 가수도 아닌, ‘이름 없는’ 가수일 뿐이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선 그가 집중해야 할 목표는, 가수 ‘싸이’의 존재감을 높여서 전세계 팬들이 싸이의 다음 노래가 무엇일지 궁금하게 만들 치밀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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