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첫 국감 ... 10.26과 동일한 날짜 ... 긴장한 국정원
브리핑 여부 혼란 빚어 ... '양치기 소년' 된 국정원 직원들
언론 공개 사안 '조 실장 면직' ... 여야 합의 실패로 4시간 지연 발표
'윤 대통령 최측근이자 원 2인자 조상준' 면직 ... 김규현 초대 국정원장 '모르쇠'

[노동일보]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실시된 10월 26일.
이날은 공교롭게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이다.
61년 전(1961년) 탄생한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은 특히, 지난 6월경 창설 당시의 초대 원훈으로 복원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의 결정은 직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게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원훈은 초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 작품이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비장한 각오로 일신한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스케치했다.

▲ 국가최고정보기관 초대 수장의 '비애'
지난 25일 밤, 대통령실 해당 비서관의 '전화 통보'에 김규현 초대 국정원장은 즉시 수긍했다.
'대통령의 조상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면직 재가'  
자신의 부하 직원에 대한, 임면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방침에 김 원장의 숙명은 하명 복종이다.   
김 원장도 그의 칼날 앞에는 한낱 초개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그는 어찌할 바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았어도 모르고, 대통령의 의중은 더욱 모르고, 내막은 미궁이라 도통 모르고,  관련 전화 통보에 대해 아는 척 몰라야 하는 비애를 받아들였다.
그런 수수께끼는 국감장의 답변으로 드러났다. 
모르쇠, 김 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들의 '조 실장 면직' 관련 질의에 "비리이유는 모른다, 음주관련 여부는 모른다, 인사 갈등 사항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는 여야 간사단의 공식 브리핑이다. 
그림자를 밟았어도 실체가 없는, 그것이 정보기관의 보안과 기밀의 굴레다.
통상 직속 상관에게 보고해야 하는 부하 직원 조 실장의 '사의 표명'은 이날까지 적어도 김 원장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조 실장은 정부조직 상 임면권자에게 직보 형식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 그는, 윤 대통령의 최측근 2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이 정도 무게감 있는 인사라면 최상위 상관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게 순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국정원을 총괄하는 원장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1차 보고' 또는 '직접 통보'가 없었다는 것은 상기할 부분이다. 
윤 대통령 최측근의 국정원 낙마는 일신상이든 인사 갈등 사유든 중량감을 더한다.

▲ 베일에 가려진 국정원 국감장
국정감사일인 26일, 박 전 대통령 서거일과 겹쳤다.
자신이 조직한 중앙정보부 수장으로부터의 일격, 비운의 역사에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그래서 일까? 엄숙함 마저 감도는 중정의 후신인 국정원 전경. 
오전부터 분위기는 매우 진지하고 긴장됐다. 
예년에 비해 증가한 취재진 규모, 여야의 공방으로 대폭 길어진 국감 소요시간, 윤 정부의 첫 국감이라는 상징성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감 주요 사안은 △조상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전격 면직 △서해 공무원 피격 및 탈북어민 북송 △IRA(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동향 파악 여부 △북한 7차 핵실험 가능성 등이다.    
이 가운데 전날(25일) 밤8시경 부터 이날 오후까지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조 전 기조실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면직 재가 과정은 정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른바 '국정원장 패싱', 1인자인 원장과 2인자인 기조실장 간 '인사 갈등' 논란 등이 진원이다.
그러나 국감 내내 전해진 '임면권자의 통상적인 인사처리'라는 대통령실의 입장으로 사태는 일순간 수면하 상태로 남았다. 
김 원장은 물론 국정원 관계자들도 더 이상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이 일사천리다. 
국가최고정보기관의 특성상 보안은, 국가안위의 절대 불가결한 신념이다. 
직원들은 함구령에 따른 일거수일투족으로 일관했다. 
또 기관의 숲속 시설물들에 대해서는 은폐와 엄폐를 위한 보안 철칙이 엄수됐다. 
일반과 공유하는 시간의 흐름도 고요한 기밀이 될 정도의 전운마저 감지됐다.      
'행음지 향양지'의 원훈답게 침묵으로 교류하는 원 업무의 정점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에선 보통 국정감사 장소는 불문율에 부쳐진다. 
기자실과의 이격거리가 공개되면 정보위원회 위원들과 원 고위직원들의 동선이 드러난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기자들의 행동반경에 대한 감시는 더욱 철저하다. 
국감장 위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엔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암호같은 동어가 반복될 뿐.
취재진이 머무는 건물의 창 밖으로 오전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액자 속 단풍만이 호기심을 달래준다. 
국감장은 보일 듯 말 듯...        

▲ '양치기 소년' 국정원 직원(?)
브리핑은 할 듯 말 듯...
국회 정보위원회의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회의가 정회되면 그 때 여야 간사단이 언론 브리핑을 하는 게 관례다.
이날 국정감사도 대언론 공개 브리핑 사안을 두고 여야 합의가 3~4시간 지연되면서 각 위원들의 추가질의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본의 아닌 '양치기 소년'은 직원들의 급조된 역할이 됐다.
국감 시작(오전 10시) 이후 최초 브리핑은 오후 3시 또는 4시에 예고됐으나, 1시로 급 변경됐다. 
이어 후속 브리핑이 '5시'로 통보되면서 배우들(?)의 대본없는 연기는 시작됐다.
(순간, 기자실은 마감시간을 향한 고도의 집중력으로 정적을 보이는데...)
5시 30분경 브리핑 소식이 전해진다. 
"곧 여야 간사님들의 브리핑이 있을 예정입니다" 소년의 '함구령을 거역'하는 첫 외침이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에도 간사단(늑대?)은 나타나지 않았다. 
숲속의 시간은 흘러 6시경, 첫 예보가 빗나간 후의 2차 공고다. 
"여야가 공개내용 조율에 합의하지 못해 브리핑이 연기됐다고 합니다".
이어진 7시경, 3차 알림이다. 
직전과 동일한 상황이라는 전언...
조 전 실장 면직과 관련한 '인사 문제' 공개여부가 여야 간사 간 합의의 걸림돌임을 직감한 기자들. 
기자들은 업무에 진력하면서도 출입구의 인기척엔, 드디어 고개를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는 유일한 때를 맞는다.
이것도 잠시, 점차 신빙성이 낮아진 '4차 전달'에도 기자들은 푸념하며 이내 반응하지 않는다.
마침내 최종 브리핑은 8시 30분경 진행되면서 비로소 소년이 무대에서 퇴장했다. 
늑대 역할의 여당 간사는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 야당 간사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다. 
이들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잇따라 기자들에게 브리핑 지연의 미안함을 달래며 퇴청했다. (퇴청이란 중앙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기관 건물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 
드디어 밤 9시경 길고 길었던 숲속의 국정감사, 장막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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