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보] 
- 정치인의 외적 이미지와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세태
- 지자체장의 덕목은 지역 현안에 대한 전문성과 헌신
- 진짜 정치인 가려낼 유권자의 안목 절실해

경기도지사 선거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은혜 의원이 후보로 결정됐다. 윤심의 반영이 승리에 결정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앵커와 대변인 경력이 유권자의 신뢰를 얻는 배경이 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도 과거, 방송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며 뉴스를 전했다. 정치뉴스를 진행할 때는 특히 조심스러웠다. 여당 측 기사를 전한 후 시간이 부족해 야당 측 뉴스를 빠트리면 거친 항의전화를 받았다. 고의가 아니라 해도 정치인의 이름을 잘못 읽으면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뉴스의 최종전달자가 갖는 무게가 막중하기에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란 말이 있다.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nalist)의 합성어인데, 언론인으로서 정치에 투신한 사람을 다소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이다. 김은혜 후보는 단순히 폴리널리스트라 부르기도 아쉬울 정도다. MBC 기자가 되어 10년간 앵커로 활약한 후, 이명박 정부의 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가, KT 커뮤니케이션실 전무가 되고 다시 MBN에서 앵커 겸 특임이사를 지낸 후 또다시 정치인이 되어 분당갑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폴리널리스트 면허증이라도 가진 듯 자유자재이다. 

“유승민 후보님과의 토론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김 후보가 유 후보와 토론할 때 던진 말이다. 언제나 냉철하다고 정평이 난  유 후보가 칭찬에 도취된 듯 환하게 웃으며 말을 잇지 못할 때 필자는 김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승리가 경기도민의 승리로 연결될 지는 미지수이다. 김 후보는 경기도 남부와 북부 발전의 격차를 지적하고 특히 접경지역이 각종규제로부터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양수대교에 가봤느냐”는 유 후보의 질문에 “어디에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양수대교는 과문한 필자도 기억하는 경기도 경제발전격차의 상징적 장소이다. 양수대교를 중심으로 양평군 양서면은 번화하고, 남양주시 조안면은 규제에 묶여있다. 한쪽은 규제 대상인 반면 다른 쪽은 제외되는 '이중 잣대'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김 후보가 자신의 정책을 명료한 발음과 결연한 표정으로 전하는 데는 능했지만 그 정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곳을 모른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문득, 2011년 강원도지사 선거가 떠오른다. 당시 MBC앵커 출신 엄기영 후보와 MBC노조위원장 출신 최문순 후보의 토론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파리특파원 당시 트렌치코트를 자주 입었다하여 ‘버버리 엄’으로 불리던 엄 후보는 호감형 외모에 공정한 언론인의 이미지가 더해져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최 후보는 노조활동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았으나 인지도가 낮았다. 강원도 지역 6개 언론사의 공동여론조사에서 엄 후보의 지지율은 48.7%, 최 후보는 34.5%로 큰 격차를 보였다.

그러나, 여론 조사와 달리 선거의 결과는 최문순 당선이었다. 그것도 무려  55.8%의 지지율로 당선했고, 비결은 TV토론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엄 후보는 콘텐츠 부족을 노출하며 황당한 토론실력을 보였다. 이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끌며 ‘개그보다 더 웃긴 토론’으로 유명하다.  반면 최 후보는 진정성 있는 토론 매너에 도정에 대한 확실한 콘텐츠를 보여주어 준비된 강원도지사로서 롱런하였다. 이후 상당수 유권자들은 알게 되었다. 어떤 앵커는 언론인이라기보다 방송인이며 자신의 콘텐츠를 전하기보다 프롬프터에 의지해 연기를 한다는 것을. 

오늘날 방송과 정치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이다. 철학보다 퍼포먼스에 능한 정치인이 각광받는다. 모르는 것은 많아도 어퍼컷 세리머니를 잘 날려주는 정치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맞장 토론을 벌여 가학적 면모를 의심케 하는 정치인, 토론을 하는지 연기를 하는지 모를 정치인들이 한국의 파워맨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이런 때일수록 올바른 정치인을 찾는 유권자의 노력이 절실하다. 퍼포먼스에 기대지 않고 이미지 만들기에 골몰하지 않고 지금 가장 절실한 일을 찾아서 하는 ‘진짜 정치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 의원으로 5선에 이르는 동안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했던 조정식 의원이 대표적이다. 조 의원은 최근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나서며 개혁을 바라는 청년층 지지자를 중심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른바 MB악법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단상에 펄쩍 뛰어오른 모습이 화제가 되어 ‘개구리’라는 애칭을 얻었다. 일찍이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 발탁 될 만큼 전문성을 갖춘 중진이지만, 검찰독재로부터 국민을 지키고자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장을 바라볼 수 있는 경륜에도 계파로부터 자유로우며 이재명 고문이 민주당에 기반이 없던 시절부터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한, 사실상 이재명이다. 

유권자는 가려내야 한다. 화려한 화술과 기발한 퍼포먼스를 통해 얻는 만족감은 TV속 연예인을 통해 얼마든지 충족할 수 있다.

그런 포장지를 걷어내고 진실한 정치인을 세워야한다. 혼탁한 시대, 얄팍한 만족감을 주는 허울뿐인 정치인들로부터 우리사회를 지켜야한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김희정아나운서 (전KBS아나운서/세종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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