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 버스 23대에 1100여 회원들과 나눠타고 대규모 지지 모임 가져(사진=장제원의원페이스북)
장제원, 버스 23대에 1100여 회원들과 나눠타고 대규모 지지 모임 가져(사진=장제원의원페이스북)
장제원, 버스 23대에 1100여 회원들과 나눠타고 대규모 지지 모임 가져(사진=장제원의원페이스북)
장제원, 버스 23대에 1100여 회원들과 나눠타고 대규모 지지 모임 가져(사진=장제원의원페이스북)

[노동일보]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익히 알려진 가운데 대규모 지지 모임을 약 3년만에 재개해 눈길을 끌었다. 

장제원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코로나19로 중단했던 지지모임인 여원산악회 행사를 2년 7개월만에 다시 가졌다고 밝혔다. 

장제원 의원은 친윤계 의원들의 모임인 민들레 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이날 장제원 의원은 "버스 23대에 1100여 회원들이 나눠타고 함양 농월정으로 향했다"며 "날씨는 무척 무더웠지만, 회원님들과 다시 상봉한 가족처럼 얼싸안고 함께 사진도 찍고 점심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9장을 사진을 올리며 분위기를 전했다. 

장제원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때 41살의 나이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 됐다.

이어 장제원 의원은 2012년 총선에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후 총선에서는 잇따라 당선되며 지지를 받았다.

장제원 의원은 "(2008년부터)지난 14년동안 여원 가족 여러분들의 사랑과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더욱 열심히 달려 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장제원 의원은 대선 전까지만 해도 조심스런 행보를 해 왔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신 후 대규모 지지모임을 갖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장제원 의원의 이같이 외곽 조직을 다시 뭉치게 하는 것은 최근 이준석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 후 나온 것으로 더욱 정치권의 귀추가 쏠리고 있다. 

장제원 의원의 부친은 장성만 의원이다. 장성만 의원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 무투표로 당선됐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며 신한민주당 문정수 후보와 당선됐다.

당시 부산직할시의 6개 선거구에 출마한 민주정의당 후보 중 장성만 의원만 유일하게 당선됐다.

당선 직후 민주정의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됐고 이어 1987년 제12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이 됐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지난 선거에서 동반 당선된 통일민주당 문정수 후보에게 패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역시 민주자유당 문정수 국회의원에게 패했다.

장제원 의원은 장성만 의원의 둘째 아들이다. 서울 여의도중학교와 여의도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자신의 집안 소유의 동서학원 소속 대학인 경남정보대학 수석부학장, 부산디지털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현역 권철현 의원을 제치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냈다. 

이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만 40세의 나이로 국회의원 배지(badge)를 달았다. 이후 친이명박계로 분류되면서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유모차부대를 조직했던 시민이 국정감사에 소환된 상황에서, 해당 시민을 상대로 윽박 지르는 영상이 퍼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는 자신이 있는 산악회 회원들에게 220만원어치의 식사와 75만원 상당의 선물세트를 돌린데다 돈봉투를 살포한 것이 선관위에 고발되어 나흘 뒤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당시 선거에서 박근혜 대표적 키즈인 손수조가 공천을 받아 나섰지만 결국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패배한다.

장제원 의원은 2016년 친박계인 손수조가 전략 공천을 받자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총선 후 유승민, 윤상현, 안상수, 주호영, 강길부, 이철규 등과 함께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장제원 의원은 이어 2017년 1월에 바른정당이 창당되자 부산시당위원장직과 당 대변인을 맡았다.

장제원 의원은 개혁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지만 외아들 장용준 군의 성매매 의혹으로 인해 당 대변인직과 부산시당위원장직을 사퇴한다.

서울 세인트폴국제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장용준 군은 10일 첫 방송된 엠넷의 고등래퍼에 출연해 심사위원에게 호평을 받아 화제가 됐다.

하지만 방송 직후 그가 지난 해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시도한 SNS 글이 일부 네티즌에 의해 공개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장제원 의원은 2017년 유승민과 홍준표의 단일화를 추진하다 불발되자 바른정당의 다른 단일화파들과 함께 탈당한다.

그리고 동반 탈당한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복당한다.

장제원 의원은 2017년 7월 22일 추가경정예산안 표결을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표결을 보이콧하며 자리를 나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표결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본회의장에 잔류했다.

2017년 11월 13일 자유한국당의 수석대변인에 임명됐으며 이후로는 친홍 행보를 쭉 이어가며 문재인 정부를 맹렬히 공격했다. 

2018년 1월 인터넷에서 악플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점차 커지자 인터넷 댓글 실명제 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결이 났다. 

장제원 의원은 나경원 원내대표 이후, 황교안 대표 체제 이후 부터 당 지도부와 약간의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당론을 무시하고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부산 대개조 비전 선포식에 야당 의원 중 유일하게 참석하기도 했다. 

장제원은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를 마감해야한다"라며 자유한국당 당론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1대 총선에서 아들 논란에도 불구하고 부산 사상에 출마해 3선 의원이 됐다. 당선 이후 미래통합당의 실패는 정부에 대한 호감 때문이 아니라 통합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자 심판이라며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한 이래, 그의 탈이념 중도화 노선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힘 당명 변경 이후에는, 자신이 주최한 포럼에 안철수를 초청했다. 또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권성동 등 무소속 4인방을 영입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2020년 9월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 선출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올랐는데 중앙선관위원 인사청문회 진행을 위해 구성된 비상설특별위이긴 하나 정치 입문 이후 처음으로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오르는 모양새도 보였다. 

2021년 7월 윤석열 국민캠프에 종합상황실 총괄실장으로 참여했지만 아들의 무면허 음주운전 및 경찰관 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 10월 1일에는 장제원의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국민청원 동의가 2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2022년 2월 27일 윤석열 후보의 단일화 관련 인터뷰에서 윤 후보측 단일화 전권대리인을 맡았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후 후보간 최종담판으로 안철수의 사퇴 및 단일화가 이뤄졌다.

결국 당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최측근으로 물밑에서 활동하던 장제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중책을 맡는다. 

실제로 당선 다음 날인 3월 10일,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지명됐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나왔고 대통령비서실장에는 결국 장제원 대신 김대기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다. 

2022년 6월에는 민들레라는 (친윤석열)내부의 친목모임으로 약 30여명 규모의 의원모임을 만든다.

하지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시작으로 다른 당내 인물들은 반대가 나왔고, 심지어는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조차도 반대하는 여론에 나왔다. 

이런 가운데 장제원 의원은 미래혁신포럼을 재활성시키면서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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